루이트폴트 폰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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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루이트폴트 카를 요제프 빌헬름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왕국의 왕자로, 바이에른 국왕이 오토였을 당시 실권을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루이트폴트는 1821년,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의 아들로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4세의 나이에 바이에른 왕국군에 입대하여 포병 대위로 임관하였다. 1848년 혁명 당시 진정시키기 위한 연설을 하였으나, 이후 정치적인 자리를 한동안은 갖지 않았다. 여담으로 당시 그리스 왕국의 왕이었던 오톤이 자식없이 죽으면 루이트폴트가 그의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에서 정교회로 개종해야 한다는 이유로[1] 포기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형 막시밀리안 2세가 사망하자, 자신의 조카 루트비히 2세가 왕이 되었고 이 때는 좀더 중요한 정치적인 역할을 받았다. 1866년 발발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루이트폴트는 3사단을 지휘하었고, 전후에는 바이에른 왕국군을 프로이센군처럼 만드는데에 도움을 주었다. 루이트폴트는 1869년, 바이에른 왕국군의 군사 고문 위원장이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루이트폴트는 프로이센 참모부에서 바이에른 왕국군 대표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바이에른 왕국의 대표로 빌헬름 1세의 즉위식에 참여하였다. 1876년 그는 바이에른 왕국군의 원수가 되었다. 루트비히 2세가 죽기 며칠 전, 그는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루트비히 2세 사후 오토가 왕위를 물려받긴 하였으나 정신병이 있어서, 루이트폴트가 섭정으로서 실권을 잡았다. 루이트폴트도 권력욕으로 섭정을 맡은 것이었을 뿐이었으며 실권을 잡았다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바이에른 왕국의 실권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1912년에 사망했고 그의 장남 루트비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섭정이 되었다 1913년에 루트비히 3세로 즉위했다.
3.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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